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조계사 뉴스

조계사 뉴스

기타

함께해서 더욱 행복한 네 명의 도반들

  • 입력 2014.01.27
  • 수정 2024.11.05

우리 사이 도반 사이 

▲ 조계사 기본교육 73기 도반인 이상윤 거사 가족

 

“아마 부모님이 강압적으로 절에 다니라고 하셨다면 반발했을 거예요. 그런데 엄마 아빠는 그러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주셨어요. 어릴 때부터 불교가 어떤 종교인지 알 수 있게 부처님 말씀을 조곤조곤 들려주셨고, 저희들 손을 잡고 전국 방방곡곡의 절에 다니면서 어떻게 사는 게 부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인지, 왜 수행하고 보시해야 하는지 말씀해주셨어요. 저희 둘은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자연스레 불교를 배웠고 불자가 된 거죠.”

부모인 자신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두 딸을 바라보면서 대명 이상윤(59) 거사와 정각심 박진아(57) 보살 부부의 얼굴에는 봄 햇살처럼 환한 웃음이 피어난다. 자식에 대한 뿌듯함과 살뜰함이야 어느 부모인들 다르랴만 이 가족, 기본교육 73기 도반인 이 네 명 사이는 정말 뭔가 다르다. 도란도란 마치 연인들처럼 이야기 나누는 그들의 공간에는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가득하다. 따뜻하고 다감한 그들을 보고 있노라니 왠지 세상이 아름답게 느껴지고, 부모님과 형제들이 문득 그리워진다.


기본교육 73기 동기동창 가족

서대문구 홍은동 홍은중학교 앞. 크지도 작지도 않은 30여 평 넓이의 ‘플러스마트’가 이상윤 거사 가족이 운영하는 곳이다. 직장에서 은퇴한 이 거사가 작년 5월 이곳을 인수해서 큰딸 선영(법명 선혜) 씨와 함께 일하고 있다. 부인 정각심 보살도 수시로 손을 보태고, 육법공양팀에서 봉사하는 둘째 딸 승아(법명 진여심) 씨는 종종 회사 일(현대자동차 교육팀 강사)을 마치고 일손을 돕기도 한다.

 

 

▲ 이상윤 거사 가족

 

 

▲ 이상윤 거사와 정각심 보살

 

▲ 이상윤 거사와 큰딸(법명 선혜)이 함께 물품을 정리하고 있다

 

이들은 6년 전 조계사 신도가 되었고, 온 가족 네 식구가 함께 기본교육을 받았다. 다 함께 기본교육을 받자는 대명 거사의 제안에 다른 가족들도 미뤄둔 숙제를 만난 듯 흔쾌히 응해서 이뤄졌다. 대명 거사와 정각심 보살은 다시 나란히 불교대학에 진학해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거사는 중학교 2학년 때 동네에서 상여가 나가는 걸 보고 삶과 죽음을 성찰하기 시작했다. 60여 년 살면 죽을 텐데 왜 아등바등 살아야 하는지 삶이 허망해졌다. 그러면 이전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그 답을 알았을까? 궁금해서 책을 사서 서양사상을 넘겨다보았다. 그런데 너무 어려울 뿐 아니라 유일신적 사고가 자신과 맞지 않고 조금 가볍게도 느껴졌다.

 

▲ 이상윤 거사

 

종교에서 그 답을 찾고 싶어 여러 종교를 섭렵하면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고2 때는 석 달간 천도교 수도원에 들어가 명상을 하면서 신기한 체험도 했다. 하지만 결국 부처님 말씀에서 자신이 납득할 만한 깊은 답과 길을 찾아냈다.


“전국 사찰에 빚이 있어요”

가족들은 불법 속에서 살아왔다. 공부해서 알게 된 내용이나 스님 법문에서 들은 말씀을 딸들에게 설명해주고, 한 달에 한두 번씩 함께 사찰을 다녔다. 온 가족이 사찰 순례하면서 찍은 사진이 폴더만도 280여 개에 2만여 장이나 된다. 직장 때문에 대부분 저녁에 출발해서 새벽예불에 맞춰 사찰에 도착했다. 네 명의 가족은 그 순례길을 함께했고 차에서 보내는 시간은 법문을 전하거나 가족 간의 대화로 보냈다.

그렇게 다닌 사찰이 어림잡아 250여 곳. 불전은 기본이고 크고작은 불사에 꼭 동참하는 게 이 가족의 사찰 순례의 법칙(?)이다. 작은 불사는 한 번으로 끝나지만 큰 불사는 두세 번에 걸쳐 약정하고 보시한다. 그래서 개인 빚은 없는데 전국 사찰에는 빚이 많다는 게 대명 거사의 설명이다. 불사하고 이른바 ‘인증샷’을 찍는 게 자매의 취미가 되었다.

 

▲ 수덕사 성지순례 사진. 가족이 함께 성지순례를 하며 찍은 사진들이 많다고 한다

 

▲ 정각심 보살과 두딸의 모습

 

언제부턴가 두 딸은 빳빳한 새 돈이 생기면 모아두었다가 불전에 올리거나 법회에 가는 어머니께 드리는 버릇이 생겼다. 어머니 정각심 보살은 이런 딸들이 고맙고 기특해서 꼭 딸 이름으로 불사하고 보시한다.

“제 자식들이지만 멈춰야 할 때와 나아갈 때를 아는 판단력도 있고, 어른 공경하는 법이 몸에 배서 아주 믿음직해요.”

부모와 자식 간의 믿음과 사랑이 남다른 이유가 이것이었다. 이들 부부가 대견해 하는 건 공부를 잘하거나 좋은 직장에 다니는 등, 그런 외형적인 조건들이 아니다. 특히 대명 거사는 “많은 동물과 식물 등, 수많은 생명들이 다 같이 어우러져 사는 곳이 세상이다”라는 얘기를 어릴 때부터 들려주면서 딸들이 부처님을 닮은, 따뜻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길 원했다.

“애들이 시골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가 용돈을 주시면 올라오는 길에 사찰에 들러 두 분 건강을 기원하며 불사금으로 보시해요. 친구들과 놀러간 아이가 절에서 참배하고 있다며 전화할 때면 정말 눈물이 날 만큼 고맙고 행복해요.”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라지만 이런 자랑에는 흔쾌히 크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이들 부부 또한 두 딸에게는 자신들을 세상에 나오게 해준 부모인 동시에 가장 존경하는 삶의 스승이다. 직장에서나 친구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평소 엄마가 해주신 말을 떠올리며 참는다는 두 딸. 정각심 보살은 딸들이 말귀를 알아들을 때부터 “남을 편하게 해주면 그것이 네게 복으로 돌아온다. 그게 부처님 법이다.”라며 인과의 도리를 가르쳤다.

 

▲ 정각심 보살

 

“엄마는 할머니가 직접 키워 보내준 농산물을 이웃과 나눌 때도 제일 좋은 것만 골라서 이웃에 주시곤 했어요. 이상해서 왜 그러냐고 물으면 ‘남에게 주는 건 제일 좋은 걸 줘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죠.”

자신들에게 장점이 있다면 그런 부모님의 행동을 보면서 배웠기 때문이란다.

 

2년 만에 되찾은 합장주


얼마 전 ‘믿음’을 주제로 취재하는 KBS TV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파노라마〉 제작팀에게서 연락이 왔다. 대명 거사 가족이 겪은 ‘합장주’와 관련된 불가사의한 일 때문이었다. 인터넷에서 널리 퍼졌던 그 합장주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정각심 보살에게 합장주가 선물로 들어왔다. 보살이 대명 거사에게 이 합장주를 주었고, 흰색 알 하나하나에 무늬가 새겨진 이 합장주를 유난히 아껴 거사는 늘 손목에 차고 다녔다. 어느 날 집에 놀러온 어린 조카가 그걸 갖고 싶다며 하도 칭얼거려 잠깐 빼주었는데 잠시 뒤에 합장주가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아끼던 만큼 온 집안은 물론 혹시나 해서 태릉의 그 조카 집까지 샅샅이 찾아봤지만, 아무 데도 없었다.

2년이 지난 뒤, 가깝게 지내던 동네 신부님의 초대로 온 가족이 이웃들과 양양으로 여름휴가를 갔다. 저녁 미사시간이 되자 유일한 불자가족이었던 대명 거사 가족만 남겨놓고 모든 가족이 미사에 참석하러 숙소를 비웠다. 어색한 마음에 잠깐 “우리도 개종할까?” 하는 말을 나누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새벽, 자고 일어난 텐트 안에서 2년 전 사라졌던 합장주가 신기루처럼 나타났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던 건 워낙 아끼던 물건이었고, 특히 끈이 낡아서 잘 끊어지자 철끈으로 다시 꿰었기 때문이었다. 텐트는 2만 원에 그곳에서 빌린 것이었다.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어서, 대명 거사는 이 이야기를 널리 알려야겠다고 인터넷에 글을 올렸고, 반응은 뜨거웠다. 이해할 수 없는 일, 믿음이란 그런 것이다. 사람들은 지장기도를 하는 대명 거사에게 신장님이 찾아주셨다며, ‘가피’라고 했다.

얼마 전 거사는 마트에서 일하다가 왼손이 꺾여 손가락 인대가 늘어났다. 불교대학 삼천 배 행사를 앞둔 때였는데 절을 할 수 없을 것 같아 걱정이 컸다. 그런데 행사 2시간 전쯤 손가락에 힘이 생겼다. 무사히 삼천 배를 마치고 나자 다시 통증이 오면서 힘을 쓸 수가 없었다. 세상은 물질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님을 그는 믿는다.

“24시간 불법을 생각하며 살려고 노력합니다. 가피를 믿어요. 여러 번 느꼈으니까요.”


인과의 도리를 알고 사니 행복하다

정각심 보살은 관음기도, 대명 거사는 지장기도를 한다. 전에는 생각에 약간 차이가 있었다.

“남편이 원래 다혈질인데 십이연기와 윤회 등을 공부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더니 성격을 많이 고쳤어요. 저는 실천이나 행이 먼저이고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은 교리와 이론을 먼저 알아야 한다고 했어요. 차츰 합의점을 찾았죠. 행을 하되 교리를 알고 실천해야 바르게 할 수 있다는 쪽으로요. 하하!”(웃음)

그래서 딸들에게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한다.

“너희들 복이 많아서 바른길 걸어가는 부모 만났다고 생각해라.”

명예와 돈, 물질을 행복의 가치로 삼지 않고 인과의 도리를 알려주는 부모라는 자부심이 없고는 할 수 없는 말이다. 두 딸도 마찬가지다. 직장 일과 육법공양팀 일을 함께하기 힘들면 그만둬도 된다는 부모에게 “내 복 내가 짓는다”라며 안심시킨다.

 

 

▲ (왼쪽부터) 첫째 딸 선영(법명 선혜)와 둘째 딸 승아(법명 진여심)

 

둘째 딸 승아 씨는 아빠가 처음 조계사에 책 사오라는 심부름과 함께 “누가 말 시키면 차 한 잔 하고 와라. 그것도 인연이다”라고 했더니, 대웅전 참배를 하고 나오다가 육법공양팀장 눈에 들어 이튿날부터 과일 닦는 일로 육법공양팀이 되었다.

대명 거사에게는 개인적인 발원이 네 가지가 있다. 돈 없어 죽어가는 사람, 불우한 사람, 독거노인을 돕는 세 가지 발원과 불사에 보시를 많이 하는 일이다. 정각심 보살은 “가족에 대한 발원이 없다”며 살짝 섭섭한 척 하지만 내심 흐뭇한 표정이다.

이 부부는 행복은 물질이 아니라 마음에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자식에게 나중까지 남겨줄 가장 가치 있는 선물을 ‘불교’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부모는 등져도 부처님 법은 등지지 마라”라고 당부한다.

“포교는 남들보다 자녀들에게 먼저 해야 합니다. 대신 확신이 생길 때까지 알려주고 기다려줘야지요.”

일과가 끝나면 잠깐이라도 대화를 나눈다는 이들에게 행복은 멀리 있는 무지개가 아니라 지금 그 자리, 함께하는 그 자리가 바로 행복인 듯하다. 그들을 만날 수 있어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저작권자 © 미디어조계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