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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완료] 동명스님의 선禪심心시詩심心

자기 견해만 옳다는 옹졸한 입장을 버리자

  • 입력 2023.07.01

겨울엔 햇빛, 여름엔 그늘 좋아하니

못이 깊어야 많은 물고기가 모이는 법

눈 밝은 통치자는 이미 백성 뜻 이해했고

맘 깊은 효자도 이제 부모 마음 훤히 알았네

마른 물의 물고기, 바다에 같이 살게 했고

싸움하는 호랑이, 숲으로 돌려보냈네

산승도 다 편안할 계책 드릴까 했으나

다만 곧은 말이 바르게 이해되지 못할까 저어하였네


冬日愛陽暑愛陰 欲令魚聚在淵深

동일애양서애음 욕령어취재연심

明侯已達生民意 孝子方知父母心

명후이달생민의 효자방지부모심

將使涸鱗同處海 解來鬪虎各歸林

장사학인동처해 해내투호각귀림

山僧欲效俱安策 只恐讜言不直金

산승욕효구안책 지공당언불직금

경암응윤(鏡巖應允, 1743~1804), 「두 절의 스님이 소송을 화해한 것을 축하하며(奉賀兩寺僧和訟押前韵)」

 

 

 

우리는 한쪽은 절대적으로 옳고 한쪽은 절대적으로 그른 것으로 생각하고 이판사판 싸우지만, 세간의 일이란 백퍼센트 한쪽만이 옳고, 한쪽만이 그르지는 않다. 절집 안의 일도 분쟁이 일어나면 세속의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북한산 중흥사에서 합판으로 공양간을 짓고 살 때의 일이다. 임시로 쓰는 공양간이란 생각에 창문을 아예 만들지 않고 지었더니, 여름이 되자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이에 인부를 불러 창문을 내는데, 그분이 하시는 말씀이 새겨들을 만했다. 

“사람은 겨울에는 여름 생각 못하고, 여름에는 겨울 생각 못하는 법입니다.” 

찬바람 불 때 공양간을 짓다 보니, 여름에 더워질 것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 사람은 겨울만을 대비하고, 한 사람은 여름만을 대비했다면, 둘 다 그르지 않지만, 둘 다 그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는 서로 옳다고, 상대는 그르다고 싸우기 일쑤이다. 

 

때로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이해관계를 앞에 놓고 다투기도 한다. 경암선사가 알고 계시는 두 절의 스님이 소송까지 벌인 것으로 볼 때 이해관계가 대립되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러다가 서로가 양보하여 화해하게 된 듯하다. 이에 선사는 두 절의 스님이 화해한 것을 축하하며 시를 썼다.

두 스님의 화해는 실로 마른 물의 물고기를 바다에 살게 한 것이었고, 싸움하는 호랑이를 숲으로 돌려보낸 것이었다. 그것은 밝은 태수가 백성의 뜻을 이해한 것과 같고, 효자가 부모의 마음을 알게 된 것과 같다.

 

부처님 시대에 꼬삼비 지역에서 비구들 간에 큰 분쟁이 있었다. 분쟁의 발단은 사소한 것이었다. 당시 꼬삼비의 고시따 수도원에는 한 율사 스님이 5백 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있었고, 다른 강사 스님이 5백 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있었다. 승가의 화장실에는 인도의 전통에 따라 볼일을 보고 뒷물할 수 있도록 물통을 놓아두는데, 뒷물한 다음에는 물통을 깨끗이 비우고 엎어놓고 나와야 했다. 그런데 강사 스님이 볼일을 보고는 깜박 잊고 물통을 비우지 않고 나와버렸고, 하필이면 그 다음 차례가 바로 율사 스님이었다. 율사 스님이 강사 스님을 불러세웠다.

“스님, 스님께서 물통에 물을 남겨놓으셨습니까?”

“어이쿠, 깜박 잊었습니다.”

“그것이 계율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그것까지는 몰랐습니다. 참회하겠습니다.”

“계에는 어긋나지만, 의도적인 행위가 아니었기에 참회하신 것으로 허물이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율사 스님은 나중에 제자들에게 “강사 스님은 계율을 범하고도 자신의 허물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율사 스님의 제자들은 강사 스님의 제자들을 만나 그들의 스승을 비난했고, 그 소식이 강사 스님에게도 전해졌다. 강사 스님은 율사 스님을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했고, 율사 스님은 강사 스님이 계를 범했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했으니, 두 스승을 중심으로 양 집단은 팽팽히 맞서서 서로를 비난하는 데 혈안이 되었다.

 

도대체 화장실 물통을 챙기지 못했다는 그 하찮은 이유로 천 명의 비구들이 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그러나 그 분쟁은 소박한 것이었다. 부처님께서 나서서 서로 양보하라고 했는데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신도들이 비구들의 탁발에 응하지 않자 굶주림에 지친 비구들은 금방 화해했다.

 

오늘날 우리 승가에도 크고작은 다양한 분쟁이 있다. 스님이 종무원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한 통으로 촉발된 분쟁이 5년째 각종 법정 싸움으로 이어지고 있는 사찰도 있다. 물통을 비우지 않았다고 싸우던 꼬삼비의 비구들과 무엇이 다른가? 다른 것이 있다면 5년 내내 법정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어떤 이익이 있는가? 이익을 보는 이들이 있긴 하다. 비싼 수임료를 받는 변호사들이다. 결국 분쟁을 계속하고 있는 이들은 변호사들의 이익을 챙겨주기 위해 사부대중의 몸과 마음을 팔아먹고 있는 셈이다. 사부대중의 이익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싸움을 당장 멈추어야 한다.

 

분쟁의 세상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경암선사는 두 절의 스님에게 함께 이익되는 길을 제시하고자 했다. 그러나 선사는 그 길을 아직 말하지 않았는데, 자신의 ‘곧은 말’이 두 절의 스님들에게 이해되지 못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두 절의 스님이 소송을 포기하고 합의한 것을 두고 경암선사는 그 기쁨을 시로 남긴다. 분쟁의 해결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만, 해결의 씨앗은, 부처님께서 「사마가마 경(Sāmagāmasutta)」에서 말씀하셨듯이, 자기 견해만 옳다는 입장을 벗어던지는 데 있다.

못이 깊어야 많은 물고기가 모이는 법, 마음을 넓고 넉넉하게 갖자. 자기 견해만 옳다는 옹졸한 입장을 버리자. 거기에 분쟁의 세상에서 바르게 사는 법, 해결의 실마리가 있다.

 

 

동명스님 (조계종 교육아사리, 광명 금강정사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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