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스님 인사말
2023년 10월 인사말
바람에 실려 온 가을하늘이 온통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오곡백과는 살이 차오르고 그야말로 결실의 계절 가을입니다. 우리 조계사 불자님들의 마음 속 가을은 어떤 빛으로 물들고 계실는지 궁금합니다. 결실의 계절임에 초점을 맞추면 불안한 생각이 앞서게 되고 시작의 계절임에 초점을 맞추면 평화로워집니다.
특히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란 점에서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불안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무엇인가 결실을 맺지 못했다는 점은 상실감과 불안감으로 자기 자신을 힘들게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한생각 돌리면 달라진다는 사실을 우리 불자님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이치가 단지 새싹이 돋아나는 봄을 통해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야만 가능한 일임을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다.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이렇게 솔직하고 확실한 진리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우리도 자연의 한 부분임을 깨닫고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법을 배워 나가야 하겠습니다.
가을밤 외로운 밤 벌레 우는 밤
초가집 뒷산 길 어두워질 때
엄마 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셉니다.
가을밤 고요한 밤 잠 안오는 밤
기러기 울음소리 높고 낮을 때
엄마 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셉니다.
제가 아주 좋아하는 동요 ‘가을밤’입니다. 한가지 곡에 여러 가지 제목과 가사가 붙은 노래이기도 합니다. 리듬은 같지만 제목을 달리하여 다양한 가사가 붙은 명곡입니다. 모두 다른 버전이지만 결국은 외로운 가을밤을 노래하고 엄마를 그리워하는 노래로 통일이 됩니다. 출가 당시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가장 짙었던 시기였기에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가장 많이 읊조렸던 노래이지요. 바람에도 향기가 있다는 말을 실감합니다. 원고를 쓰고 있는 이 시간 바람의 향기가 그대로 전해지는 기분입니다. 지금은 어릴적에 느꼈던 그리움이 아닌 잔잔한 그리움이랄까요. 우리 조계사 도량에도 새로운 가을을 들일 생각을 하며 향기로운 국화향기를 그려 봅니다. 시월 국화는 시월에 핀다고 합니다. 우리 조계사 불자님들이 ‘지금 이 순간’을 느끼고 사랑하며 사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월국화를 선사합니다. 우리 조계사 불자님들을 위한 부처님의 선물이자 저의 마음이라 여기시고 국화향기 가득한 도량에서 행복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조계사의 시월은 참으로 환희심이 넘칩니다. 국화 축제를 시작으로 중양절 수륙재가 펼쳐집니다. 수륙재의 깊은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으로 우리 조상의 영혼뿐만 아니라 모든 영혼의 천도를 위한 대승보살의 실천에 해당합니다. 불교문화대전과 맑은 소리 합창단의 정기음악회가 열리고 어린이 미술대회, 조계사 불교대학 총동문회 문화대축전도 함께 열립니다. 일자리 나눔 취업박람회와 선지식 초청 대법회도 준비되어 있으니 일정 참고 하셔서 많은 동참 바라겠습니다.
조계사 불자 여러분!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힘들고 지칠 때일수록 마음을 밝고 맑게 가꾸어 나가시면 한결 가벼워집니다. 그저 말로만 하는 불교가 아니라 수행을 통해서 좀 더 가벼워지는 우리 불자님들이 되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기도의 힘을 믿고 정진해 나가시기를 당부합니다. 마음을 다해 기도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도가 끊이지 않는 도량 조계사에서 행복한 시월을 맞이 하시기 바랍니다. 결실의 계절 가을은 봄, 여름, 겨울과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마음 먹은 지금이 봄이고 가을입니다. 행복은 우리 마음에 있습니다. 잊지 마세요.
2023년 9월 인사말
행복은 가을 햇살 같은 것긍정적인 사람은 누구보다 삶을 아름답게 가꾸며 살아갑니다. 자신이 갖지 못한 것에 마음을 두지 않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습니다. 내게 주어진 삶에 감사하고 희망으로 가득 찬 꿈을 꾸며 삽니다. ‘믿는 대로 된다’라고 하는 긍정의 힘을 믿습니다. 이렇게 되면 어떤 날이 다가와도 미소를 짓게 될 것입니다.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아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긍정적인 일과 부정적인 일을 놓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깨닫게 됩니다. 선택은 남이 아니고 내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을 선택하겠습니까? 긍정을 선택하고 긍정의 에너지를 가져가야 우리 삶이 비로소 행복해질 게 분명합니다. 더구나 긍정의 에너지는 내게 오면서 반은 나에게 오고, 반은 나와 가까운 사람에게 갑니다. 이토록 선한 영향력으로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삶으로 회향해 간다면 이보다 아름다운 원력이 또 있을까요?
우리 조계사 불자님들의 기도 제목은 저마다 다 다릅니다. 조계사에 매번 오셔서 기도하시는 불자님도 계시고, 집에서 온라인으로 기도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길을 걸으며 기도하시는 불자님도 계시고, 일하면서 기도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 기도하는 분도 계시고 불규칙적으로 기도하는 분도 계십니다. 무엇이 맞다 틀리다는 없습니다. 기도하는 삶 자체가 정성을 들인다는 의미이기에 기도의 파장과 공덕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무한하고 큽니다. 그리고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고도 넓습니다. 기도하는 삶은 그렇습니다. 막연하기만 한 미래가 명확해지기도 하고 불안전한 행복이 구체적으로 다가오는 느낌이 듭니다. 경건하고 고요하기보다는 재미나고 밝아집니다. 특히 무척 어렵던 일이 쉽게 풀리는 경우를 맛보게 되기도 합니다. 기도하는 삶은 내면의 힘을 길러 주고 자신을 사랑하게 만듭니다. 긍정 확언을 해 주면 인생에 기적이 일어난다는 의미입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 삶을 기적처럼 만들고 싶다면 정성을 다해 기도하는 삶을 살아보길 적극적으로 추천합니다. 뇌는 말의 지배를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내뱉은 말은 뇌에 각인이 됩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이 실제로 그러하기에 만들어진 말이니 우리 조계사 불자님들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조계사 불자님들께 제가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가족을 부처님처럼 모시라는 이야기입니다. 부처님을 모시듯 가족 구성원 한분한분을 생각한다면 결코 다툴 일도 없고 이해 못 할 일도 없을 겁니다. 용서하지 못할 것이 없고 다툴 일이 없을 뿐만 아니라 힘든 일이 있을 때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고 바람막이가 되어 줍니다. 가족의 소중함을 알고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백중을 맞이하여 무더위 속에서도 기도의 간절함이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 어느 해보다 기도의 간절함이 느껴졌고, 지극한 마음으로 정성을 들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기도를 함께 해 주시는 스님들은 물론이고 뙤약볕에서도 모든 의식에 동참하며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하시는 우리 조계사 불자님들을 뵙는 깊은 환희심이 느껴져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감동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마음에는 이처럼 가족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가득합니다. 담아 놓지만 마시고 마음껏 표현도 하면서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9월의 끝자락에 한가위가 들어 있습니다. 조금 귀찮더라도 전통을 고수하며 가족을 위해 추억의 명절 음식도 차려보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조계사에서는 한가위 아침에 합동 다례재를 봉행하고 한가위 하루 전에는 3일기도 입재를 합니다. 올벼로 만든 송편도 나눠 먹고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소중한 추억 만들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수해와 태풍으로 가족을 잃고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주변을 조금만 둘러보아도 정말 어려운 이웃들이 많습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 얼마나 아름답고 벅찬 일인지 우리 조계사 불자님들은 항상 실천하며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침에 드는 햇살이 자신의 단잠을 방해할 뿐인 불행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저 햇살이 새로운 아침을 열어 준다며 고마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행복이란 건 아마도 이 햇살 같은 것입니다. 긍정의 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023년 8월 인사말
생명살림 지구살림조계사에서는 지난 7월 19일 수요일, 초재를 시작으로 49일 동안 일곱 번의 백중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연일 비가 내리더니 초재를 지내는 날엔 화창하게 날이 갰지만 뙤약 볕에도 불구하고 의식을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시는 우리 조계사 불자님들을 뵈니 저절로 마음이 숙연해짐을 느꼈습니다. 여러분의 간절한 기도 속에 도량 곳곳이 환희심으로 넘치는 시간입니다. 기나긴 장마철을 지나 본격적으로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우리 조계사는 홍련과 백련이 도량을 장엄했고 무더위 속에서도 기도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한국불교 1번지 조계사의 힘이고 영험이라 생각합니다.
우란분경에 등장하는 목련존자보다 우리 조계사 불자님들의 마음이 더욱 간절함을 느꼈습니다. 목련 존자의 화신들이 도량을 가득 메우고 있다는 생각으로 우리 불자님들을 바라보았습니다. 무더위 속에 땀을 뻘뻘 흘리며 가족과 이웃을 위해 기도하시는 우리 조계사 불자님들이 바로 목련존자이고 불보살들이십니다. 또한 음력 칠월 보름날 하안거를 마친 스님들께 공양을 올리고 조상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자신의 삶에 정성을 들인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기나긴 장마로 인해 정말 많은 인명피해를 입었습니다. 천재지변이라지만 결국은 인재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기후위기, 탄소중립 등 환경문제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불교의 생명존중사상과 함께 부처님의 가르침이 얼마나 소중한 진리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비하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는 우리 조계사 불자님들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진흙 속에서 자라지만 고귀하고 깨끗한 꽃을 피우는 연꽃을 보며 배웁니다. 어느 곳, 어느 자리에 있어도 탐욕에 물들지 않고, 항상 깨끗함을 간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맑고 향기로운 꽃으로 피어나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연꽃의 인생을 보고 배우게 됩니다. 연잎 위로 빗물이 고일 때 적당히 담겼을 때 비워내면 가볍습니다. 비우지 않고 그대로 버티고 있으면 부러지게 마련입니다.
『화엄경 탐현기』에서는 연꽃이 향(香), 결(潔), 청(淸), 정(淨)의 네 가지 덕을 가지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불·보살이 앉아 있는 자리를 연꽃으로 만들어 연화좌 또는 연대라 부르는 것도, 번뇌와 고통과 더러움으로 뒤덮여 있는 사바세계에서도 고결하고 청정함을 잃지 않는 불·보살을 연꽃의 속성에 비유한 것입니다. 스님들이 입는 가사를 ‘연화복’ 또는 ‘연화의’라고 하는 것 역시 세속의 풍진에 물들지 않고 청정함을 지킨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등 연꽃은 불교의 곳곳에 사상의 토대가 되는 꽃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렇듯 연꽃은 진흙 곧 사바사계에 뿌리를 두되 거기에 물들지 않고 하늘을 향해 즉, 깨달음의 세계를 향해 피어나는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꽃송이가 크지만 몇 개의 꽃잎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중심을 향하여 겹겹이 붙어있어 형성된 모습이 불상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는 모든 꽃은 꽃이 지면 열매를 맺지만 연꽃은 꽃과 열매가 동시에 맺혀 화과동시(花果同時)라고 합니다. 이는, 깨달음을 얻고 난 뒤에야 이웃을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기심을 없애고 자비심을 키우며 모든 이웃을 위해 사는 것 자체가 바로 깨달음의 삶이라는 것을 연꽃이 속세의 중생들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라고 여겨집니다.
연꽃의 생명은 3일인데 첫날은 절반만 피어서 오전 중에 오므라듭니다. 이틀째 활짝 피어나는데, 그때 가장 화려한 모습과 아름다운 향기를 피어냅니다. 3일째는 꽃잎이 피었다가 오전 중에 연밥과 꽃술만 남기고 꽃잎을 하나씩 떨어뜨리는 점 때문에 연꽃은 자기 몸이 가장 아름답고 화려할 때 물러날 줄 아는 군자의 꽃으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하안거 해제일에 백중기도를 회향하고 9월 3일에는 생명살림방생을 함께 하고자 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 생명살림법회가 자연의 소중함을 알고 감사하는 마음을 함께 하는 시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연꽃 향기 가득한 조계사 도량에서 우리 불자님들의 기도소리가 더욱 크게 울려 퍼지기를 기원합니다.
2023년 7월 인사말
단오·연꽃·백중단오가 되면 소금단지를 땅에 묻는 세시풍속이 있습니다. 조계사에서도 매년 시행되고 있는 행사이지요. 단지 화마를 막기 위한 것만은 아닙니다. 모든 번뇌 망상도 함께 묻어 버리자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우리 조계사 불자님들의 마음까지도 치유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마음으로 행해지는 행사입니다. 소금은 이토록 우리의 삶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보물입니다. 보석과도 같은 소금처럼 우리 조계사 불자님들도 부처님의 소중한 보물입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아름다운 내면을 만들어 가는데 정성을 들여 보시면 좋겠습니다. 마음의 불을 끌어안고 사는 삶은 불행한 삶입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에 중점을 두고 사랑하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만 만나면서 살아도 모자란 시간입니다. 좋아하는 일, 반가운 만남, 나를 설레게 하는 일만 해도 부족한 시간입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는 무조건 나가서 걸으십시오. 마음이 힘들고 어려울 때도 무조건 나가서 걸어야 합니다. 우리 조계사 불자님들께 제가 꼭 전달해 드리고 싶었던 메시지 중에 하나입니다. 지치고 힘들 때일수록 무조건 나가서 걸어 보시고 그래도 힘이 들면 열심히 걸어서 가까운 절에 들러 부처님을 만나 보시면 저절로 마음에 평화가 찾아옵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통해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것이 아주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마음 근육을 키우는 것은 몸 근육을 키우는 일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임을 깨닫게 되실 것입니다.
연꽃의 계절이 돌아오면 우리 조계사에서는 아름다운 연꽃의 향연이 펼쳐집니다. 염화미소를 떠올리며 연꽃이 주는 치유의 꽃길을 걸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도량 가득 피어나는 연꽃을 바라보며 우리 조계사 불자님들의 마음속에 화사한 연꽃이 피어나길 소망합니다.
7월 13일(목)에 백중 기도를 입재해서 8월 30일(수) 7재를 끝으로 회향하게 됩니다. 백중 기도 일정을 확인하시고 꼭 동참하시기를 권합니다. 내가 공부해서 마음을 깨치면 부모 형제들이 죽어 어디에 가 있는지 알게 됩니다. 진정한 효도는 내가 자성을 깨치는 일입니다. 내 마음을 알게 되면 나와 부모가 둘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 것처럼 내가 평안하면 부모님도 평안한 것이고 내가 괴로우면 우리 부모님도 고통에 계시게 되겠지요. 백중을 맞이하여 우리 조계사 불자님들은 나를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것이 무엇인가를 직시하고 그 고통 속에서 벗어나 본래면목인 참 나로 살아가는 것만이 진정한 효도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부처님의 제자 중에 목련존자의 신통력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 효심이었습니다.
부처님의 가피가 항상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