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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완료] 이미령의 본생경 이야기

밤샘 수행이 지켜준 것

  • 입력 2023.05.26

삽화 | 견동한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머물러 계실 때 일입니다.


사밧티 성 안에 재가신자 한 사람이 살고 있었지요. 이 사람은 가정생활을 하면서도 바른 삶이란 무엇인가를 깊이 사유하면서 부처님을 향한 깊은 믿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성자의 첫 번째 경지(수다원)’에 도달하였습니다.


어느 날 이 사람이 멀리 떨어진 지역에 일이 있어서 상인들과 길을 나섰습니다. 여러 가지 값비싼 물건들을 낙타에 가득 싣고 출발한 그들은 한참을 걷다가 인적 드문 깊은 숲속에 이르자 그곳에서 야영하기로 했습니다. 


낙타에게서 짐을 풀어 내려놓고 빙 둘러서 누웠습니다. 모두들 곯아 떨어졌지만 딱 한 사람, 바로 그 재가신자는 잠들지 않았습니다. 그는 상인 무리에게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어느 나무 아래로 가서 천천히 걸었습니다. 자신의 두 발을 앞으로 내딛는 동작에 주의를 집중하면서 호흡을 관찰하며 마음에 일어나고 가라앉은 상념들을 바라보며 걷고 또 걸었습니다.


때마침 그 숲에 살고 있던 도적들은 상인들이 야영한다는 정보를 듣고 저마다 손에 무기를 들고 살금살금 그곳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잠들지 않고 경행하고 있는 그 재가신자를 보고서 말했습니다.


“저 자는 틀림없이 상인들의 불침번일 것이다. 저 자가 잠들면 그때 덮치자.”


밤이 깊어지면 불침번을 서고 있는 저 상인도 피곤을 이기지 못해 잠들 것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제나 저제나 경행하고 있는 저 남자가 스르르 바닥에 쓰러져 잠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저마다 손에 활이며 칼, 몽둥이를 꽉 움켜쥔 채 말이지요. 


그런데 그 재가신자는 저녁부터 나무 아래를 천천히 오가기 시작했는데 한밤중이 되어서도 그 행동을 멈추지 않았고 밤이 깊어 훤히 동이 터올 때까지도 잠자러 가지 않고 경행을 이어갔습니다. 밤새 무기를 손에 쥐고 그가 잠들기만을 기다리던 도적들은 결국 빈손으로 달아나버려야 했지요. 


깊은 잠에서 깨어난 상인들은 주변에 흩어져 있는 사나운 무기들을 보며 소스라치게 놀랐고, 밤새 자신들이 이 재가신자 덕분에 목숨을 보호했을 뿐만 아니라 저 값비싼 물건들도 지킬 수 있었음에 안도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목적지에 도착하여 무사히 일을 마치고 사밧티로 돌아왔지요. 고향으로 돌아온 재가신자는 부처님을 찾아뵙고 인사를 여쭈었습니다. 그리고 도적들 일이 떠올라 이렇게 물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자기를 지키면서도 그것이 타인을 지키는 일이 될 수 있을까요?”


부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재가신자여, 자기를 지키는 일은 타인을 지키는 일이 되고, 타인을 지키는 일은 또 그대로 자기 자신을 지키는 일이 됩니다.”


“맞습니다. 세존이시여.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제가 상인들 무리와 길을 나섰다가 ‘나무 아래에서 경행하며 내 자신을 지키고 보호하자’라고 생각하고서 밤새 그렇게 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상인들 전체를 지키는 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듣고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재가신자여, 현자들의 행동이 바로 그렇습니다. 현자들은 자기 자신을 지키려고 하는데 이런 행동이 결국은 다른 이를 지킨 적이 많습니다. 전생에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과거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옛날 바라나시에서 브라흐마닷타 왕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을 때, 보리살타는 바라문 집안에 태어났습니다. 그는 성인이 되자 세속의 욕망에는 허물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 집을 떠나 유랑하는 수행자가 되었습니다. 히말라야 산 기슭에 머물며 날마다 명상을 하며 지내던 어느 날 소금과 식초를 구하러 마을로 내려갔습니다. 그곳에서 탁발을 하던 중에 상인들 무리와 함께 다른 지역으로 길을 나서게 되었습니다.


상인들은 어느 숲 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서 모든 짐을 내리고 야영을 하기로 했습니다. 보리살타는 상인들과 짐 더미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선정을 즐기면서 어느 나무 아래를 천천히 경행하며 있었지요. 


바로 그때 오백 명의 도적들 무리가 상인들의 물건을 훔쳐가려고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도적들은 보리살타를 보고서 ‘저 자가 우리를 발견하면 야영하고 있는 사람들을 부를 것이다. 그가 잠든 뒤에 훔쳐가자’라며 숨죽이고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수행자(보리살타)는 한밤중이 되도록 잠잘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는 천천히 경행을 이어가고 있었고, 기다리다 지친 도적들은 결국 때를 잡지 못하고서 저마다 손에 들고 있던 온갖 무기들을 다 내던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분한 마음에 큰소리로 외치며 달아났지요.


“야영하고 있는 자들아! 이 수행자가 나무 아래에서 밤새 걷고 있지 않았다면 너희가 가진 것 전부를 우리에게 다 빼앗겼을 것이다. 너희는 이 수행자에게 아주 크게 고맙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 소리에 깨어난 대상들은 도적들이 버리고 간 흉기들을 보고서 경악했습니다. 겁에 질려 보리살타에게 다가가서 물었지요.


“당신은 지난 밤 도적을 보셨습니까?”


“네, 보았습니다.”


“당신은 이 도적들을 보고서도 전혀 무섭지 않았습니까?”


“벗이여, 재산이 있는 사람은 도적을 보고 겁에 질릴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재산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내게는 겁날 일이 없습니다. 마을에서나 깊은 숲속에서나 내게는 무서울 것도 두려울 것도 없습니다.”


이렇게 말한 뒤에 상인들에게 설법을 하고서 다음의 시를 들려주었습니다.

마을에 있을 때에도 근심이 없고
숲에 있을 때에도
내게는 두려울 일이 없다.
자애의 마음(慈)과 연민의 마음(悲)을 가지고
곧바로 천상(梵天)에 이르는 길을 오르고 있다.

보리살타가 시를 들려주자 사람들은 마음에 기쁨이 차올랐습니다. 흉악한 도적들을 담담하게 물리친 그에게 깊은 존경을 담아 절을 올렸지요. 그 후 보리살타는 죽을 때까지 ‘네 가지 숭고한 경지(四梵住:자비희사)’를 실천하며 수행을 이어나갔고 그곳에서 생을 마친 뒤에 범천의 세계에 태어났습니다.


세존은 이 이야기를 들려주시고 과거 전생을 현재에 잇대어 말씀하셨습니다.


“그때의 상인들은 지금의 내 제자들이고, 수행자인 보리살타는 나였다.”(본생경 76번째 이야기)

 


현생의 재가신자 이야기와 전생의 보리살타 이야기가 비슷하면서도 서로 조금 결이 다릅니다. 현생의 재가신자의 경우는 도적들이 재물을 빼앗으려 다가오는 것을 인지했는지가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그저 그는 자신의 수행을 이어나갔을 뿐이지요. 상인들과 똑같이 길을 걸었으니 피곤할 법도 하지만 이 사람은 휴식조차도 수행으로 채웠습니다. 밤새 나무 아래를 거닐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관찰하면서 외부에 작은 소리나 움직임에 주의 집중이 흔들리지 않도록 지키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 수행은 몸·느낌·마음·법 네 가지를 관찰하는 사념처 수행법을 말합니다. 부처님도 ‘자신을 등불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으라(자등명법등명)’고 말씀하시면서 “사념처 수행을 하는 것이 자등명법등명이다”라고 일러주셨습니다. 

수행은 수행하는 본인에게 더할 수 없는 큰 공덕을 짓는 일입니다. 탐욕이나 성냄이 마음에 일어난다고 해도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으니 세속에 살아도 번뇌에 시달리지 않고, 급한 생각에 서두르다가 일을 그르치는 일도 없습니다. 그러니 마음공부를 잘 하는 재가신자가 세속의 삶을 망칠 수는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스스로를 다스리고 보호하는 수행이 그 자신에게만 이익이 될 리가 없습니다. 그가 속해 있는 공동체 전체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사람들은 그를 믿고 의지하며 그를 따라 정신을 집중하고 스스로를 절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그 공동체에 반듯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퍼지면 그릇된 마음을 품은 다른 사람들이 감히 넘볼 생각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자기를 지키는 행동이 다른 이를 지키게 되고, 다른 이를 지키는 행동이 자기를 지키는 일이다”라고 재가신자의 말을 인가한 것입니다.

이어서 부처님이 들려주신 전생의 보리살타 이야기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밤새 깨어서 스스로를 관찰하는 수행을 한 보리살타 덕분에 도적들을 피할 수 있었던 상인들이 그에게 이렇게 질문을 던집니다. 무섭지 않았느냐고요. 우리는 모두 나를 공격하려고 틈을 노리는 자의 인기척을 느끼면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내 목숨을 빼앗길까봐, 내 돈을 빼앗길까봐, 내 몸을 다칠까봐 겁을 집어 먹지요. 어쩔 수 없습니다. ‘나’와 ‘내 것’을 보호하려 움켜쥐는 것은 사람의 본능입니다. 그런데 움켜쥘수록 두려움은 더 커집니다. 지키려는 마음이 강할수록 그것을 빼앗으려는 적의 힘은 더 거대하게 다가옵니다. 외부의 적은 그대로인데 내부에서 내가 그려낸 적이 그렇게 점점 세력을 키웁니다. 결국 사람들은 외부의 적에게 맞서기 이전에 내부에서 스스로 키운 적에게 굴복하고 맙니다.

하지만 수행하는 사람은 자신의 것을 빼앗으려 다가오는 외부의 적만 있을 뿐 자기 마음에서 키운 내부의 적이 없습니다. 그저 담담히 외부의 적들이 자신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대처합니다. 수행자에게 있어 그 대처는 바로, 하던 수행을 그냥 이어나가는 것입니다. 마음에는 상대방을 향한 자비심을 품고서 말이지요.
모진 세파를 헤쳐 나가야 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들이 너무 멀게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내 수행이 이웃의 행복을 함께 도모하는 길이요, 움켜쥐려는 마음이 강할수록 세상의 미지의 적들을 향한 두려움이 커진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자꾸 생각해 나가다보면 어느 사이 생활 속 수행자로 변해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면서 말이지요.


이미령 (경전 이야기꾼, 불교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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