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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완료] 천년숲 사찰기행

밤 깊도록 문 열어둔 동백꽃의 그리움

  • 입력 2023.04.24

햇살과 바람, 사찰이 일군 숲, 강진 백련사 동백숲길 

 



자연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언제일까? 산과 들 곳곳이 화려한 꽃 잔치로 생기 넘치는 봄날인가, 꽃보다 더 고운 단풍잎이 바람 따라 이리저리 날리는 쓸쓸한 가을인가? 어쩌면 햇살 눈부신 강렬한 여름이나 흰 눈이 온 세상을 뒤덮는 숨죽인 한겨울을 더 아름답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3월 말, 온 천지가 이미 꽃대궐이다. 전라도 강진 땅, 그 남도의 봄 한가운데로 가까이 들어갈수록 자연은 생명의 기운을 다 쏟아내듯 더 짙은 원색으로 바뀐다. 야트막한 등성이를 따라 검붉은 황토밭이 끝없이 펼쳐지고, 마을 앞 보리밭과 대밭의 초록빛 일렁임이 아지랑이처럼 눈앞을 어지럽힌다. 유채꽃, 장다리꽃의 샛노란 봄빛에 홀려 잠시 멀리 산을 바라보면 연초록 나뭇잎들 사이로 진달래 분홍 꽃이 수줍게 안겨온다. 남도의 원색은 징하게 장렬하다. 

 

천연기념물 동백나무 숲을 품은 만덕산 백련사 
백련사(白蓮寺)의 창건 당시 이름은 만덕사(萬德寺). 전남 강진군 만덕산의 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신라 고찰이다. 구강포 해안에 가까이 붙어 있어서 절 마당이나 대웅보전 기둥에 기대어 내려다보면 탁 트인 강진만 풍경이 훤하게 펼쳐진다. 
만덕산 입구부터 백련사까지 이어지는 찻길에 동백나무가 즐비하다. 동백나무가 가로수라니, 동백꽃을 보려고 먼 길을 달려온 마음이 뿌듯이 차오른다. ‘만덕산 백련사’ 편액이 걸린 일주문 앞이 절 주차장이다. 일주문 턱을 넘어서자 ‘천연기념물 제151호 백련사 동백숲길’ 표지돌이 눈에 띈다. 여기부터 백련사 동백숲이 시작된다. 대웅보전까지 올라가는 길이 세 갈래로 나뉘는데, 왼쪽으로 난 잘 닦인 황톳길은 해탈문을 거쳐 다산초당과 경내로 이어지고, 맨 오른쪽 길은 자동차가 주인이다.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백련사 동백숲길을 제대로 맛보려면 숲속으로 난 가운데 길을 택하는 게 좋다. 수백 년쯤 해묵은 동백나무에 가려 한낮에도 어둑한 그 오솔길에는 얕은 도랑이 흐르고, 미니어처 같은 작은 언덕이 오밀조밀하다. 도랑물에 떨어진 채 물결 따라 빙글빙글 돌고 있거나 숲길에 무심히 툭 몸을 던져 바닥을 붉게 수놓은 동백꽃의 모습이 현실과 동떨어진 동화 속 풍경 같다. 아름다운 순간은 지극히 짧은 법, 마당 앞 만경루까지는 운치를 즐기면서 한눈을 팔고 걸어도 10분 남짓이면 충분히 닿는다. 



백련사의 상징, 동백나무숲과 야생차 밭
동백꽃은 다른 꽃이 다 지고 난 10월부터 피기 시작해서 이듬해 4월까지 피고 지기를 거듭한다. 꿀은 많지만 겨울철에는 벌과 나비가 없으니, 강렬한 붉은색 꽃과 노란색 꽃술로 동박새나 직박구리를 유인해서 꽃가루받이를 하게 하는 보기 드문 조매화(鳥媒花)다.
절 주변에 동백나무가 많은 까닭은 두껍고 윤기가 흐르는 동백잎이 불에 잘 타지 않기 때문이다. 백련사 동백은 중흥조인 원묘 국사 요세 스님(1163~1245) 때 심은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서 동백나무 숲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여섯 곳 가운데 사찰은 세 군데로, 강진 백련사, 고창 선운사, 광양 옥룡사가 있다. 
백련사 동백나무 숲은 군락지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1962년 문화재청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면적이 총 49,886㎡, 주변 동백숲을 포함하면 약 52,000㎡에 달한다. 100년~300년 나이에 키가 5m~15m인 동백나무 1,500여 그루가 가시나무, 비자나무, 소나무, 차나무, 참나무, 후박나무 등과 천연 혼효림을 이룬다. 나무 생김새가 번듯하지 않고 혹이나 옹이가 진 것처럼 보이는 나무가 많은 것이 백련사 동백나무의 특징이다.
동백나무는 쌍떡잎식물로 원산지가 우리나라라는 기록이 있다. 명나라 약학자인 이시진이 쓴 《본초강목》의 ‘해홍화 출신라국(海紅花 出新羅國)’이라는 기록이다. 해홍화는 동백꽃의 중국식 이름으로, ‘동백꽃은 신라에서 왔다’라는 뜻이다. 당나라 시인 이태백 시집에도 ‘해홍화는 신라에서 들어왔는데 귀하다’라고 적혀 있다. 
꽃가루받이가 한창인 동백나무 숲은 하루 종일 수선스럽고 시끌벅적하다. 이 나무 저 나무를 날아다니며 동백꽃에 부리를 박고 꿀을 빠는 동박새의 날갯짓에 동백꽃은 하릴없이 툭툭 땅에 떨어진다. 동백꽃이 꽃송이째 땅에 떨어져 있는 모습은 색다른 장관이다. 특히 백련사 동백나무 숲의 절경은 땅에 떨어진 동백꽃이 빨갛게 숲을 물들인 모습이다. 그래서 동백꽃은 나뭇가지에서 한 번 땅에 떨어져서 또 한 번, ‘두 번 피는 꽃’이라고도 한다. 

 

백련결사로 어려운 시대의 희망이 되다
839년 무염 국사가 창건한 이래 한동안 쇠락했던 백련사는 고려 후기에 요세 스님(1163~1245)이 이끈 신앙운동 결사체 ‘백련결사(白蓮結社)’로 말미암아 다시 한 번 전성기를 맞이한다. 종루 뒤쪽에 보존된 ‘백련사사적비’(보물 제1396호)에 따르면, 1211년(고려 희종 7년) 요세 스님이 옛터에 절을 중창하고, 백련결사 운동을 펼쳤다고 한다. 
백련결사 운동이 120여 년간 이어지면서 백련사에서는 8대 국사와 8대 종사가 배출되었다. 이런 백련사 내력은 다산 정약용(1762~1836)과 그의 제자들이 찬술한 《만덕사지》와 중종 때의 명문장 윤회(1380~1436)가 지은 《만덕산 백련사 중창기》, 그리고 조종저(1631~1690)가 찬한 ‘백련사사적비’ 비문에 남아 있다. 
조계종의 정혜결사를 주도한 지눌 스님(1158~1210)의 친구이기도 한 요세 스님은 백련결사로써 천태종의 법맥을 이었다. 이때 모인 제자만 스님 38명, 왕족과 귀족, 문인, 관리 등 결사자가 300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1681년 탄기 스님이 세운 이 사적비에 대해 《만덕사지》에 “옛 비는 유실되어 소재를 알 수 없고 귀부(거북 모양 받침돌)만 남았다. 탄기 스님이 다른 돌로 비를 세우면서 옛날 비석(원묘 국사비)의 귀부를 사용했다.”라고 적혀 있다. 고려 전기에 조성한 귀부에 조선시대 작풍의 비석을 앉힌 이 사적비는 뛰어난 조각 기법으로 인해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다. 비석의 앞면에는 백련사의 역사를 적었고, 뒷면에는 불사 동참자의 이름을 새겼다. 특히 양 측면에 새긴 초화문이 매우 아름답다. 
고려 왕조 말기 왜구의 침략이 잦아지자 해안가의 백련사는 폐사가 되고 만다. 그러나 임진왜란 후에 불교가 민간신앙으로 널리 퍼지자 행호 스님이 세종의 둘째 형 효령 대군(1396~1486)의 후원을 받고 중창한다. 이때 왜구 침입에 대비해서 절 앞에 토성을 쌓았는데 그것이 행호산성이다. 지금은 그 자리에 동백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1760년 큰 화재로 전각 등 수백 칸이 타버렸고, 2년 여에 걸친 불사 끝에 1762년 대웅보전과 만경루가 완공되었다. 대웅보전은 정면 3칸, 옆면 3칸의 다포식 팔작지붕으로, 추녀마다 활주를 세워 건물을 받치고 있다. 주불로 목조 여래삼존불을 봉안했다. 이들 현판 글씨는 조선 후기의 명필 원교 이광사(1705~1777)가 썼다. 현재 대웅보전 안에 걸려 있는 ‘만덕산 백련사(社)’ 현판은 조선 명필 김생의 글씨라고 전해온다.





혜장 스님과 정다산이 오가던 오솔길 
천 년 세월에 세상은 놀랄 만큼 변했지만, 백련사 동백나무 숲은 동백 군락지의 모습을 지킨 채 여전히 아름답다. 사적비를 지나 오른쪽 능선을 넘어가면 위아래 방향으로 다시 동백나무 숲이 시작된다. 오래된 동백나무가 빽빽하게 숲을 이루고, 목이 부러지듯 툭 떨어진 꽃송이가 나무 밑을 빨갛게 물들여 융단을 깔아놓은 듯하다.
아직은 탐스런 꽃송이가 안타까워 사람들은 땅에서 또 한 번 피고 있는 꽃송이를 주워다 바위나 길 위에 ‘하트’ 모양도 만들고, 사랑하는 이의 이름도 그려 놓고 사진으로 남긴다. 
토종 동백나무인 백련사 동백은 꽃송이가 홑겹이고 작지만, 붉은색 꽃잎과 노란색 꽃술의 대비가 선명하고 동백잎의 진록색이 잘 어울리면서 묘하게 마음을 홀린다. 그 붉디붉은 동백꽃이 수북히 떨어지는 비스듬한 언덕에 백련사 부도밭이 자리 잡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고 가장 아름다운 부도밭’이라는 그곳에는 일곱 기의 부도가 편안한 거리를 두고 바닷가를 향해 무심하게 서 있다. ‘백련사원구형부도’(전남 유형문화재 223호)와 월인당 부도, 춘파당 부도, 범자문 부도 1기, 무명 부도 3기 등이다.
그 부도밭 아래에는 정갈한 차밭이 동백나무 숲과 경계를 이루고 펼쳐져 있다. 부도밭과 차밭을 지나 오른쪽 능선을 따라 완만하게 난 산길을 걷는다. 백련사와 다산초당을 잇는 오솔길이다. 다산초당은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 선생이 10년 동안 유배생활을 한 유배 처소다. 백련사에서 약 1km 거리에 있는 다산초당을 백련사 주지 아암 혜장(兒巖 惠藏, 1772~1811) 스님이 때론 한밤중에 횃불을 들고 찾아갔고, 다산도 궁벽한 유배지의 외로움이 사무치면 혜장 스님을 만나러 이 길을 넘어오곤 했다. 
불가의 수행자와 실학자로서 서로 신분이 달랐던 두 사람, 나이도 혜장 스님이 열 살이나 어렸지만 밤을 지새며 토론을 벌이거나 학문을 논할 만큼 서로의 뛰어난 식견과 지식에 감탄하고 존경했다고 한다. 다산이 1805년부터 10년간 다산초당에 머문 것도 외가인 윤씨 가문의 자제들을 가르치기 위함이었지만, 혜장 스님과 가까이 있고 싶은 이유가 컸다고 한다. 두 사람이 《주역》과 《역경》을 주제로 밤을 지새운 이야기는 다산의 글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예부터 만덕산은 차 나무가 많아서 ‘다산’이라고도 불렀는데, 정약용의 호 ‘다산’이 ‘차 나무가 많은 산(만덕산)에 사는 선생’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혜장 스님의 ‘아암(兒巖)’이라는 호는 다산 선생에게서 비롯되었는데,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를 모아 엮은 《견월첩(見月帖)》에는 서로를 향한 지극한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나무뿌리와 나무 계단이 완만한 이 오솔길은 땀 흘리거나 숨 헐떡이지 않아도 편안히 걸을 수 있는 황톳길이다. 동백나무 숲과 야생 차나무가 아름다운 길, 친구를 찾아 오가던 두 사람의 설렘을 상상해본다. 그런 벗이 있다는 건 최고의 축복이다. 그렇게 걷다 보면 강진만을 바라보고 서 있는 해월루와 천애각이 차례로 나오고 마침내 다산초당에 도착한다. 
40분 정도 걸리는 이 길은 2009년 ‘제10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숲길 부문에서 장려상을 받았다. 해월루와 천애각에서 바라보는 구강포 앞바다의 경치도 아름답지만, 200여 년 전 두 사람의 인연, 우정이 있어 더 아름답다. 

“제가 요즘 차를 탐하게 되어 차를 약으로 마시고 있습니다. - 중략 - 아침 햇살이 막 비추기 시작할 때나, 뜬구름이 푸른 하늘에 피어날 때, 또는 오후 낮잠에서 갓 깨어날 때, 그리고 밝은 달이 시냇물에 비출 때 차 마시기에 좋겠지요. - 중략 - 이제 제가 병에 걸려 차를 구하고자 걸명의 뜻을 전하고자 합니다. - 중략 - 마땅히 목마르게 바라는 뜻을 생각하시어 차 보시의 은혜를 베푸소서.”

다산이 한겨울에 혜장 스님에게 보관 중인 차를 보내달라면서 간절히 쓴 〈걸명소(乞茗蔬)〉라는 글이다. 방금 만나고 돌아와 자리에 누워도 다시 그리운 벗, 두 사람은 그래서 밤 깊도록 문을 열어두고 서로 기다렸다고 한다. 동백꽃 꽃말인 ‘겸손한 그리움’이 두 사람의 우정과 딱 어울리지 않는가.



 

노희순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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