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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완료] 남전스님의 새로운 신행이야기

남전스님의 새로운 신행이야기

  • 입력 2023.12.01

 

 

 

 

(질문) 평소 궁금한 점이 있으면 여러 불교 관련 글을 찾아봅니다. 윤회에 대해 부분은 과거와 

현재 미래의 삼세윤회를 주로 설명하는 것 같은데, 이것은 윤회의 연속성을 강조한 

것인가요? 지난 호 사보를 읽었는데, 윤회와 업과 인과의 관계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습니다.

 

질문하신 것처럼 지난 호에 이어서 업과 인과, 윤회의 관계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 하겠습니다. 우선, 윤회와 업, 인과에 대한 교리적 이해는 계속해서 공부하면 좋겠다는 말씀드립니다. 혹 이해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먼저 신행적으로 받아들이고, 실천적으로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윤회는 업(業)과 인과(因果)라는 개념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업과 인과를 일반인들은 물론 불자들도 너무 문자적, 개념적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말과 “타고난 업 탓이다.”라는 말처럼 업과 인과는 어쩔 수 없는 일을 합리화하는 데 자주 쓰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본래의 의미와는 다른, 많은 오해가 생기기도 하지요. 실제로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 잘 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인과는 조금만 생각해 보면, 삼세(三世) 간으로 나타나고 통하는 것입니다. 일시적으로 한때만을 보아서는 곤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선악의 과보로 인과가 없다고 판단할 수는 없겠지요. 그보다는 아직 시간이 안 되었다고 할까요? 다만 인(因), 과(果)의 사이에 연(緣)이라는 조건과 상황이 있어서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예상하지 못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인연의 과보는 틀림없이 있을 것입니다. 업은 행위라는 말입니다. 다른 종교들의 내세관이 일회적인데 반해서 인도인들은 연속적으로 이해했습니다. 그 판단기준이 인간의 행위, 즉 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행위는 신체적 행동뿐만 아니라 마음의 작용도 포함됩니다. 흔히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이라 표현하는데요. 신(神)들에 의해 결정되는 운명으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와 노력으로 미래가 

 

결정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보통의 인도인들이 윤회와 업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이고 천상(天上)에 나는 것을 목표로 했다면, 불교는 인간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자신의 미래를 개척하는 인간 자유의지와 무한 능력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것은 불교의 성격을 규정하는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불교는 인과와 업에 의해 자유롭지 못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구제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합니다. 그래서 윤회와 업, 인과에서 벗어나는 영원한 행복을 위한 삶을 불교 수행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진정한 자유를 해탈(解脫), 진정한 행복을 열반(涅槃)이라 하는데, 이것은 윤회와 업, 인과를 극복한 경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은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한 한계 때문인지 사람들은 인생에서 자기의 과거를 알고 싶어 하고, 미래의 일을 궁금해 합니다. 또 이번 생에 만족하지 못한 자기 신세를 한탄하며 전생(前生)의 업으로 돌리기도 하지요.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윤회하는 주체를 자기와 동일시하는 데서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윤회의 주체를 우리의 의식으로 보는 편이 좀 더 이해하기 쉽습니다. 

사실 불교의 핵심 중 하나는 행위의 인과관계입니다. 

그것을 결정하는 실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요. 자기의 문제를 스스로가 해결할 수 있다는 것, 다시 말해서 자기 창조, 자기 변화의 가능성이 중요합니다. 불교는 이러한 이치를 확고하게 받아들이기 위한 방편으로 윤회설을 선택했다고 봐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윤회는 의식의 문제입니다.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의 생각의 변화를 통해 우리 현실을 개조할 수 있음을 불교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사후세계에 집착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행위 결과가 사후에 미치는 모습에 대해 많은 상상을 합니다. 그러나 윤회의 모습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가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판단할 수 없는 미래의 문제는 침묵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입니다. 윤회의 모습을 인간의 여러 마음과 심리상태로 본다면, 행위 결과의 연속인 윤회의 반복도 스스로 집착을 버리고 본성을 찾는 노력으로 소멸됩니다. 그래서 불교는 윤회에 대해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가 중요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남전스님 (포교원 포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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