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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완료] 이미령의 본생경 이야기

생명, 내 목숨을 줄 테니 네 죽음을 다오

  • 입력 2023.12.01



아주 오랜 옛날 보살은 사슴의 모태를 빌려서 태어났습니다. 망아지만한 크기의 몸은 황금빛을 띠었고, 양 눈은 마니보석과 같았고, 두 뿔은 은빛이고, 입은 붉었으며, 네 발가락 끝은 옻칠을 한 것처럼 까맣고, 꼬리는 야크의 꼬리와 같았지요. 보살 사슴은'니그로다미가’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오백 마리의 사슴들을 거느리고 그 무리의 왕으로 숲에서 살아갔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 오백 마리 사슴을 거느린 ‘싸카미가’라는 황금빛을 띤 또 다른 사슴왕도 살고 있었지요.그때 바라나시를 다스리던 왕은 사슴 사냥에 빠져서 사슴 고기가 없으면 식사를 하지 못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왕의 고기식사를 위해 생업을 쉬고 사냥하러 다녀야 했지요. 그런 날이 이어지자 사람들이 생각했습니다.‘왕의 매끼 식사를 위해 우리가 너무 고생스럽다. 이 동산에 사슴 먹이와 물을 마련해서 사슴들을 유인하자. 사슴들이 들어오면 문을 잠그고, 매일 한 마리씩 왕의 식사로 바치면 되리라.’
그리하여 두 마리 사슴왕이 이끄는 수많은 사슴들은 정원으로 들어왔고 결국 그 많은 사슴들은 왕의 음식이 될 운명에 놓였지요. 사람들이 왕에게 보고를 하자 왕은 서둘러 동산으로 나아갔습니다. 
수많은 사슴떼를 살펴보다 온몸이 황금빛으로 빛나는 두 마리 사슴을 보고 감탄을 하면서 말했습니다.“무슨 일이 있어도 이 두 마리는 해치지 말라.”그날 이후 왕은 언제든지 정원으로 직접 사냥하러 가거나 요리사를 시켜서 사슴을 한 마리씩 잡아오도록 했습니다. 사슴들은 왕이나 요리사가 활을 들고 나타날 때면 두려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수많은 사슴들이 화살을 피하려고 이리저리 달아났지만 그로 인해 더 많은 화살을 맞거나 화살을 빗맞아서 큰 상처를 입고 병들어 죽는 일도 속출했습니다. 결국 보살인 니그로다미가 사슴이 또 다른 우두머리 사슴인 싸카미가에게 제안했습니다.
“벗이여, 너무 많은 사슴이 희생되고 있소. 이 정원에서 죽을 수밖에 없다면 안타까운 희생은 없도록 하는 게 옳을 것이오. 순번을 정합시다. 하루는 나의 무리에서, 다음 날은 그대의 무리에서 차례로 왕이나 요리사 앞으로 나아간다면 최소한 다른 사슴들이 다치거나 죽는 일은 없을 것이오.”싸카미가는 동의했습니다. 
그때부터 순번이 돌아온 사슴이 요리사 앞으로 가서 목을 내밀었고, 그는 어렵지 않게 사슴을 사냥해 갔습니다. 어느 날, 싸카미가 사슴왕의 무리 가운데 암사슴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암사슴은 새끼를 배고 있었지요. 암사슴이 자신의 우두머리인 싸카미가에게 애원했습니다. 
“제 차례이지만 새끼를 죽일 수는 없습니다. 새끼를 낳은 뒤에 차례를 지킬 것이니 그때까지 차례를 건너뛰게 해주십시오.” 싸카미가는 거절했지요. “그대의 순번을 누구에게 넘길 것인가! 조용히 요리사 앞으로 나아가라.”
암사슴은 싸늘한 대답에 크게 실망하여 다른 무리의 우두머리인 니그로다미가 보살 사슴을 찾아가서 간청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알았소. 그대 대신 내가 목숨을 내놓겠소.”그는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요리사의 사냥터로 가서 자신의 목을 내놓고 누웠습니다. 요리사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고 여겨 왕에게 보고했고, 왕이 많은 신하를 거느리고 찾아와 보살사슴에게 물었습니다. 
“사슴왕이여, 나는 황금빛 그대의 안전을 보장했는데 왜 여기에 누워 있는가?”보살사슴이 말했습니다.“대왕이여, 새끼를 밴 암사슴이 와서 자신의 순번을 다른 사슴과 바꿔 달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누군가에게 닥친 죽음의 고통을 다른 자에게 덮어씌울 수 없었습니다. 
래서 저는 제 목숨을 그 암사슴에게 주고, 암사슴에게서 죽음을 받아 여기에 누워 있는 것입니다. 그저 이런 사연 때문입니다.”왕은 크게 감탄하며 말했지요.
“이보게, 황금빛 사슴 왕이여, 이렇게 그대처럼 인내와 자애와 연민으로 가득 찬 자를 사람 가운데서도 본 적이 없소. 그대에게 청정한 믿음이 생겨났소, 일어나시오. 나는 그대와 그 암사슴의 안전을 보장하겠소.”그러자 보살 사슴이 청하였습니다.
“저희 둘의 목숨을 보장해주셔서 고맙지만 남은 사슴들은 어찌 하시렵니까?”
“다른 사슴들도 모두 안전하게 살도록 보장하겠소.” 
“대왕이여, 사슴들의 안전을 보장하셨지만, 다른 네 발 달린 동물들, 두 발 달린 동물들, 물에 사는 동물들은 어찌하시렵니까?”
“그들 모두의 안전도 보장하겠소.”
이리하여 보살사슴은 왕에게 모든 생명을 지켜줄 것을 청하여 약속을 받았으며, 그 후에 자리에서 일어나 왕에게 다섯 가지 계행을 일러준 뒤 마지막으로 당부했습니다.
“대왕이여, 정의롭게 행하십시오. 부모와 자녀, 성직자와 장자들, 시민과 백성들을 정의롭고 평등하게 대하면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의 세계로 갈 것입니다.”
보살인 니그로다미가는 이렇게 왕에게 부처님의 위엄을 갖추고서 가르침을 설한 뒤 사슴 무리에 둘러싸여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후 시간이 지나 암사슴은 연꽃 봉오리 같은 새끼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새끼 사슴이 놀다가 싸카미가에게 다가가자 어미인 암사슴이 말리면서 시를 읊었습니다. 니그로다미가를 섬기고싸카미가에게는 다가가지 마라. 싸카미가 곁에서 사느니니그로다미가 곁에서 죽는 것이 낫다. 부처님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서 말했습니다.
“당시 싸카미가는 지금의 데바닷따, 그를 따르는 무리는 데바닷따의 무리이고, 암사슴은 장로비구니, 암사슴이 낳은 새끼사슴은 장로비구니의 아들인 꾸마라 깟싸빠, 왕은 아난다였으며, 니그로다미가 보살 사슴은 실로 나였다.”(본생경 12번째 이야기)



결혼한 여성이 구도의 마음을 내고 출가했습니다. 남편도 아내의 수행을 적극 지원하였지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여성은 석가모니 부처님에게로 나아가지 않고 데바닷타에게로 나아가서 출가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비구니가 되어 정진하는 가운데 몸의 변화를 느꼈고, 자신이 출가 전 임신했음을 뒤늦게 알아차렸습니다. 비구니 스님은 데바닷타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출가한 비구니 스님이 절에서 자식을 낳는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입니다. 그렇다고 뱃속의 아이를 어찌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데바닷타는 두 번 생각하지 않고 비구니를 쫓아 버렸습니다. 하지만 이 스님의 잘못은 아닙니다. 임신한 줄 알았다면 출산하고 아이를 키운 뒤로 출가를 미루었을 것입니다. 이미 집은 나왔고, 뱃속의 아이는 점점 커져가고, 그럼에도 구도자로서 살아가고픈 열망이 꺾이지는 
않았습니다. 결국 비구니 스님은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나아가서 자신의 처지를 고하고 도움을 청했지요. 부처님은 계율에 정통한 우팔리 존자에게 이 일을 의뢰했고, 우팔리 존자는 당시 여성재가신자로서 거의 지도자급이었던 위사카의 도움을 받아서 고민한 끝에 결정을 내립니다.

- 이미 한 여인의 몸에 깃든 생명이니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 임신으로 인해 비구니의 구도심이 약해지지 않았으니 비구니의 출가는 유효하다.
- 아이를 낳으면 재가자가 거둔다. 

그리고 아이는 건강하게 태어나서 파세나디 왕의 궁전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입양인 것이지요. 꾸마라 깟사빠란 이름을 지닌 아이는 자신의 출생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서 훗날 자신도 출가합니다. 용맹정진 끝에 오래지 않아 최고의 성자인 아라한이 되고, 그 어머니인 비구니 스님 또한 아라한이 되었다고 합니다. 비구니 스님이 데바닷타의 처분을 따랐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엄마는 승가에서 내쳐진 신세한탄을 아이에게 퍼부었을 것이고, 아이는 엄마 인생을 망친 장본인이라는 자기혐오를 품었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이두 모자의 삶이 얼마나 팍팍해졌을까요?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 속에는 적대감과 원망이 가득 찼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기꺼이 이 모자를 끌어안은 부처님 덕분에 두 사람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승가의 염려 속에 엄마는 편안하게 출산했고, 아이는 훌륭한 집안으로 입양이 되었으며, 더 나아가서는 모자 둘 다 성자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모든 생명은 그 자체로 소중합니다. 생명이 소중한 이유는 달리 없습니다. 그저 생명이기 때문에 보호 받아야 하고, 존중 받아야 하고, 사랑 받아야 합니다. 태어나서 이미 인생을 시작한 존재가 그러하듯, 모태에 깃든 생명 또한 소중합니다. 어떤 경위로 잉태되었든 말이지요.
니그로다미가 왕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뱃속의 새끼사슴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습니다. 누군가에게 닥친 죽음의 고통을 다른 자에게 대신 겪으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럴 수 없음을 아는 사람은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고 상대의 죽음을 받아들입니다. 
“저는 누군가에게 닥친 죽음의 고통을 다른 자에게 덮어씌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목숨을 그 암사슴에게 주고, 암사슴에게서 죽음을 받아 여기에 누워 있는 것입니다. 그저 이런 사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슴왕 앞에서 생명이란 것이 어떤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를 깨달은 인간의 왕은 한 끼라도 고기가 없으면 밥을 먹지 못한 자신을 반성합니다. 식탁을 풍성하고 기름지게 만드는 일에는 늘 어떤 생명이 희생되게 마련입니다. 육식을 끊어야 한다고는 감히 말할 수 없지만, 내 기름진 한 끼를 위해, 느끼고 두려워하고 생각하는 살아 있는 목숨들이 재료가 된다는 점은 인지해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다른 생명은 그저 취미로 즐기는 사냥의 대상이거나 푸짐한 음식재료에 지나지 않지만 바로 그 생명을 지키고자 보살은 제 생명을 내놓았습니다. 대웅전에 앉아 계신 부처님은 이런 생각을 지니고 이런 행동으로 세상을 살아오신 분이었지요.







   
《 53선지식 구법여행 
    서른두 번째
● 일 시 : 2023년 12월 22일(금)
오후7시
● 장 소 : 조계사 대웅전
● 강 사 : 김상영 교수
(전 중앙승가대교수)
● 주 제 : ‘임진왜란 참전 의승의
활동과 그 공적’ 
● 문 의 : 불교대학총동문회 
총무부장 도운 
010-5309-9972

 

이미령 (경전 이야기꾼, 불교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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