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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완료] 동명스님의 선禪심心시詩심心

‘빛과 소리의 쇼’에 취할지라도

  • 입력 2023.12.01

바위샘은 밝은 달을 맞이하고 

뜰앞의 잣나무는 맑은 바람 끌어오네

몸은 소리와 모양 속에 앉아 있어도

마음은 소리와 모양을 떠났어라

 

巖泉迎白月 庭柏引淸風

암천영백월 정백인청풍

身是坐聲色 心非聲色中

신시좌성색 심비성색중

괄허취여(括虛取如, 1720~1789), 「바람과 달(風月)」

 

 

바위샘을 떠올려본다. 설악산의 오색약수터같이 바위의 움푹 파인 부분에 맑은 물이 고여 있다. 맑은 물에 밝은 달이 살포시 내려앉았다. 밝은 달은 푹 잠겨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물 위에 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함박웃음을 머금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냥 바라보고 있기만 해도 마음이 저절로 고요해지는 풍경 속에서, 마당의 잣나무 한 그루가 맑은 바람을 불러와서는 어떤 교향악단도 연주할 수 없는 곡을 어떤 악보에도 없는 리듬과 가락으로 들려준다. 일찍이 인간계에는 없었을 것 같은 천상계에서나 연출될 법한 전시회 및 음악회에 탄성을 지르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다. 이 아름다운 연주회의 분위기를 깬다면, 보이지 않게 관람하고 있는 뭇 생명체들이 나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연주회가 한창 진행되고 있지만, 이 연주회는 밤새 계

속될 것이기에 「바람과 달」이란 제목의 연주회를 연출한 바위샘을 만나 소리 없이 대화해본다. “반갑습니다, 바위샘님! 자기소개 좀 부탁드립니다.”“예, 저는 암천사(巖泉寺)에서 수행하고 있는 바위샘이라는 수행자입니다.”

“이번에 특별한 연주회를 기획했다구요. 무대가 아주 독특합니다.”“이번 연주회의 무대는 하늘에 보름달이 떴을 때 그 보름달을 제가 초대함으로써 완성됩니다.”“조연출자가 있다고 들었습니다.”“이번 연주회의 조연출은 뜰앞의 잣나무가 맡았습니다. 그는 저의 제자입니다.”“두 분은 어떤 수행을 하고 계십니까?”“저는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고요하고 단단한 마음을 단련하고 있습니다. 뜰앞의 잣나무는 흔들리면서 온갖 바람을 받아들이는 마음을 훈련하고 있습니다.”“당신이 무대를 만드셨다면, 뜰앞의 잣나무는 어떤 역할을 하셨습니까?”

“제가 무대만 만든 게 아닙니다. 달을 안은 바위샘의 모습은 무대이지만, 바위샘에 내려앉은 달은 연주자이기도 합니다.”“달은 무슨 음악을 연주합니까?”“소리 없는 소리를 연주합니다.”“좀 어렵습니다. 다시 질문하겠습니다. 당신의 제자 뜰앞의 잣나무는 어떤 역할을 하셨습니까?”“뜰앞의 잣나무는 두 가지 역할을 했습니다. 

첫째는 바람을초대하는 역할을 했구요. 

둘째는 바람에 흔들리면서 바람소리에 맞추어 가지와 나뭇잎으로 음악을 연주하는 역할을 했지요.”

“수행자는 춤추고 노래하는 공연을 하거나 구경하는 것도 안 된다고 들었는데요?”

“부처님께서는 진리를 춤으로 표현하고 노래하는 것이나, 그런 춤과 노래를 보고 듣는 것은 오히려 권장하셨습니다.”계속 진행된 인터뷰 내용을 직접화법으로 전하기에는 번거로워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본다.

바위샘은 고요함의 상징이다. 고요함을 연습하는 것을 정학(定學)이라 한다. 바위샘은 정학을 중심으로 마음을 닦는 수행자인데, 그 마음은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확고부동한 마음이다. 확고부동하고 고요한 마음은 바른 생활을 토대로 한다. 바른 생활을 연습하는 것을 계학(戒學)이라 한다. 바른 생활은 바위샘에 고여 있는 맑은 물로서, 바른 생활을 통해서만 바위샘에 맑은 물이 고인다. 달은 지혜의 상징이다. 바위샘이 달을 받아들이는 것은, 고요한 마음속에 지혜가 깃들 수 있음을 말해주며, 마음이 고요해야 지혜로워질 수 있음을 말해준다. 뜰앞의 잣나무는 불성(佛性)을 상징한다. 제자가 조주스님께 여쭈었다. “달마대사가 서쪽에서 오신 까닭은 무엇입니까?” “뜰앞의 잣나무니라.” 이 선문답에 등장하는 뜰앞의 잣나무가 바로 오늘의 조연출자다. 뜰앞의 잣나무는 유연하다. 온갖 바람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바람이 동쪽에서 불어오면 그 바람의 방향에 따라 가지와 이파리를 서쪽으로 향해준다. 북쪽에서 불어오면 그 바람의 방향에 따라 가지며 이파리를 남쪽으로 향해준다. 그렇게 유연하지만, 뿌리는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는 것도 뜰앞의 잣나무의 특징이다. 유연함은 자비를 뜻하면서 동시에 지혜를 뜻한다.

자비와 지혜는 어디서 왔을까? 뜰앞의 잣나무가 초대하는 맑은 바람에게서 연유한다. 맑은 바람도 맑은 물처럼 바른 생활로서 계학을 상징한다. 뜰앞의 잣나무의 지혜와 자비는 맑은 바람과 맑은 달빛과 맑은 바위샘을 배경으로 완성된다.이를 종합해볼 때 계학을 통해 자비와 지혜가 비롯되고, 계학을 바탕으로 정학이 완성되며, 정학을 바탕으로 혜학이 완성되고, 계학과 정학과 혜학을 바탕으로 자비와 지혜가 완성된다. 델리의 레드포트에서 본 ‘빛과 소리의 쇼’를 잊을 수 없다. 붉은 성을 향해 다양한 색깔의 빛과 장중하고 화려한 음악이 투사되면, 관람객들은 넋을 잃는다. 아름다운 건축에 매료되었던 샤자한의 욕망이 거기 보이는 듯하고, 질기디질긴 인간의 집착이라는 진실이 아름다우면서도 처절하게 보인다.부처님께서는 「금강경」에서 말씀하신다. ‘빛과 소리의 쇼’에 속지 말아라! 괄허선사는 노래한다. “몸은 소리와 모양 속에 앉아 있어도/ 마음은 소리와 모양을 떠났어라!” 20대에 읽은 돈연스님의 시집 「벽암록」에는 “노인은 한평생 밭을 떠나지 않았다. 밭을 떠나지 않았지만, 한번도 밭에 얽매인 적이 없었다.”라는 시가 있었다.이렇게 멋진 선배들이 계시는데, 후배들은 당연히 ‘빛과 소리의 쇼’에 속지 않을 수 있다. 오늘밤에는 괄허선사가 약 250여년 전에 기록했던 바위샘과 달과 뜰앞의 잣나무와 맑은 바람이 연주하는 ‘빛과 소리의 쇼’를 관람하리라! 돈연스님의 시 속 노인이 밭을 떠나지 않으면서도 밭에 얽매이지 않았듯이, ‘빛과 소리’를 마음껏 향유하면서도 ‘빛과 소리’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을까?

동명스님  (조계종 교육아사리, 잠실 불광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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