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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화 원명 스님

  • 2023년 12월

불기2567년, 계묘년을 회향(廻向)하며

조계사 신도 여러분, 올 한 해를 시작할 때의 목표와 다짐을 성취했거나 잘 지켜오셨습니까. 자칫하면 연말 분위기에 휩싸여 흐트러지기 쉬운 12월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부처님 제자로서의 걸맞은 삶을 살았는지 스스로 돌아보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보통 12월을 회향의 달이라고 합니다. 그럼 회향이란 무엇일까요. 여러분도 다 아시다시피 회향은 방향을 돌려서 다른 곳으로 향하게 한다는 뜻으로 자기가 지은 공덕과 선근을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쓰일 수 있도록 방향을 돌려 정진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런 의미라면 회향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정진으로 이어지는 것이고 다시 정진은 회향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회향과 정진은 결국 따로 떨어져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12월은 지나온 한 해를 되돌아보고 마음을 가다듬어 허물을 참회하고 새로운 각오로 돌아오는 한 해를 계획하는 회향의 달인 것입니다.

 

이 회향의 달에 동지(冬至)가 들어 있습니다. 동지는 글자 그대로 겨울에 이르렀다는 뜻으로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입니다. 따라서 동지가 지나면 점점 낮의 길이가 길어지기 때문에 예로부터 동지를 일 년의 시작으로 삼아 왔습니다. 우리가 동지를 ‘작은 설’이라고 부르고 ‘동짓날 팥죽을 먹어야 한 살을 더 먹는다’라고 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그래서 동짓날 하면 하얀 새알심을 넣은 팥죽이 생각나는데요. 왜 팥죽을 먹을까요. 팥의 붉은색은 양색(陽色)이라고 하여 음귀(陰鬼)를 쫓는 데에 효과가 있다고 전해지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동지는 밤이 가장 긴 날이기 때문에 어두운 음기가 가장 강한 날이라고 할 수 있고 이러한 어두운 음기를 팥으로 만든 음식을 먹음으로써 쫓아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우리 신도님들은 동짓날에 조계사를 찾아 동지불공을 드리고 부처님 전에 팥죽 공양을 올리어 새해의 발원(發願)을 다짐하고 부처님 전에 공양한 팥죽을 절에서는 물론 집에 가져가 이웃과 함께 나누어 먹는 것이 상례가 되었습니다. 조계사도 종로구에 거주하는 힘들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새해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며 팥죽을 함께 나누는 풍습을 계속해서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동지에 팥죽을 먹는 것은 단순히 나쁜 기운을 쫓아내는 데에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가족은 물론 이웃 간에 서로 나누어 먹었던 이유를 생각해 보면 가족과는 지난 한 해를 함께 돌아보며 잘못에 대한 참회와 새로운 다짐을, 이웃과는 추운 겨울을 함께 건강하게 잘 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회향의 진정한 의미가 동짓날 불공을 드리는 이유와 맥을 같이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선동력(夏扇冬曆)이라고 동짓날에는 달력을 선물하는 풍습도 있습니다. 농경사회였던 과거에는 24절기에 맞추어 농사를 짓기 위해 달력이 매우 요긴했기 때문에 달력은 매우 소중한 선물이었습니다. 요즘에도 동지 무렵인 연말연시에 새해 달력을 주고받는 풍속이 여전한 것도 바로 이와 같은 전통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절 역시 매년 달력을 만들어 신도님께 나눠드리고 있습니다. 농민들이 달력에 맞춰 씨를 뿌리고 가꾸어 수확의 결실을 맺었듯이 신도 여러분께서도 조계사 달력에 맞춰 기도하시고 수행하시고 정진하시어 맺은 결실을 회향의 진정한 의미대로 이웃들과 나누시길 기원해 봅니다.

 

새해를 맞은 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한 해를 마감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난달에 새롭게 주지 소임을 맡아 국화꽃 축제를 무사무탈하게 잘 마무리하였습니다. 한 해를 돌아보면 항상 그렇듯이 조계사에는 크고 작은 일이 참으로 많습니다. 이 모든 불사(佛事)를 무사 원만하게 회향하고 현재의 조계사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변함없는 신심으로 조계사를 위해 헌신한 신도 대중 여러분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신도님들께 새로운 주지 소임자로서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모두의 마음이 따뜻해질 수 있는 행복한 마무리로 올겨울도 건강하게 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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