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스님 인사말
가슴으로 하는 신앙
이 글을 쓰는 지금, 조계사에서는 올해 불기 2567년 부처님오신날을 봉축하는 행사가 하나둘씩 열리며 부처님께서 이 땅에 나투심을 찬탄하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펜데믹으로 4년 만에 열린 조계사 동자승 단기출가 ‘보리수 새싹학교’도 있습니다.
오랜만에 우리 천진불 동자 스님들의 웃음소리가 햇살과 더불어 도량을 더욱 싱그럽게 만들고 있는 오월의 어느 멋진 날입니다. 또 얼마 전에는 제2회 화목한 삼대 가족 ‘하하하 노래자랑 대회’가 성황리에 개최되었습니다. ‘하하하 노래자랑 대회’는 불자 가정이 화목하게 지내길 바라는 마음에서 처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목표는 삼대가 함께하는 합창단을 만들어서 할머니·할아버지가 지휘하고 가족이 함께 합창연습을 하며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내년에는 더욱 발전된 모습의 노래자랑 대회가 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한편, 불기2567년 부처님오신날은 ‘부처님오신날 조계사 48일 기도’가 회향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원컨대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소구소원하신 모든 발원이 성취되시기를, 또 우리 조계사 가족 모두 부처님의 가피로 항상 우환이 없고 행복한 가정 이루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조계사에서 기도하시는 많은 신도님을 보면서 문득 우리의 신앙심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십오륙 년 전 겨울이었습니다. 눈이 날리기 시작하는 길을 재촉하며 절을 향해 가던 중에 걸음을 멈췄습니다. 건너편 산 아래,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고목이 한 그루 서 있고 그 앞에 한 노파가 서 있는 것이 눈에 띄였기 때문입니다.
‘이 추운 날씨에 무얼 하고 계시는 것일까?’
이러한 생각도 잠시, 가까이 가서 보지 않아도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고목을 향해 양손을 높이 들어 큰 원을 그리며 가슴에서 모았다가 허리를 굽히며 무엇인가 간절히 기원하며 마음을 다해 기도하는 모습. 가던 길을 멈추고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리도 간절한 노파의 기도는 과연 무엇일까? 추운 날씨 탓도 있었겠지만 지금도 떠오르는 강렬한 인상입니다.
차디찬 겨울날, 그것도 눈발이 흩날리는 추운 날에 남루한 의복에 장갑도 끼지 않은 채 아주 옛날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마을의 고목을 찾아 정성을 드리고 계셨습니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단정히 쪽진 노파의 머리카락을 흩뜨려 놓았지만 노파의 표정은 진지하고 간절했고 짙게 파인 주름 사이로 보이지 않는 눈물까지도 느껴졌습니다. 정말 가슴으로 기원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노파는 종교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그저 간절히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오로지 자식들의 안녕을 위해 간절히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그야말로 가슴으로 하는 신앙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무엇을 신앙하는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신앙하며, 얼마만큼의 정성을 기울여 신앙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니까요. 노파의 모습을 보고 절에 도착해서 가슴으로 하는 신앙의 절실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과연 어떤 신앙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 가끔 신앙심보다 지식과 교리 위주의 신앙생활만 하고 있지 않은지, 물론 지식과 교리도 중요하지만 신심을 바탕으로 그 위에 교리를 얹어 놓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신심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신앙생활에서는 옳지 못한 행동들이 많이 발견되곤 합니다. 앎에 대한 삿된 상(相)이 생기는가 하면 하심할 줄 모르는 어리석음을 범하기도 합니다.
밤이 되면 장독대 앞에 나가 북쪽 하늘을 보며 무엇인가 간절히 비는 모습, 부뚜막 위에 정화수 떠 놓고 아침마다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는 모습, 생일상 차려놓고 어진 조왕님과 삼신님께 건강을 기원하는 모습, 첩첩산중 절에 올라와 나무관세음보살을 염하며 부처님의 가피를 기원하는 모습. 마음을 다해 기도하고 염하는 우리네 어머니들의 모습에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기도 가피로 자라온 우리의 마음에는 가슴 저미는 어머니의 사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내내 간절히 기도하던 노파의 모습이 잊히지 않았습니다. 그 노파의 기도 속에 들어 있을 그 누군가가 부러워졌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나의 눈에 눈물이 맺혔습니다. 가슴으로 행하는 신앙, 그 노파의 모습에서 배워야 할 것이었습니다.
불기 2567년 부처님오신날을 보내며 그 노파의 기도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진정 노파의 기도는 누군가에게 전해졌을 것입니다.
가슴으로 하는 신앙
천년의 불사
등불 밝힌 마음을 선물하세요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
희망의 씨앗을 심는 달
토끼의 공양
나눔은 행복
국화 단상(斷想)
기도의 공덕
회화나무 꽃잎을 쓸며
비울수록 맑아지는 샘물처럼
우란분절은 베푸는 날
더불어 함께 하는 숲을 보며 배우자